제목 인지위덕 忍之爲德

구연: 강학운스님

채록: 법진

채록일 1993년 경

마을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농사를 짓고 가족들을 건사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지만 평생 촌 무지랭이로 살던터라, 가족들 이름과 평생의 좌우명이나 하나 자기 손으로 쓸 수 있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다.


어느날 그 마을에 도인스님이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도력도 높고, 공부도 많이 하신 스님이라기에 농부는 이 스님을 만나서 부탁을 드리면 자기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는 부푼꿈에 뜬 잠을 자고는 새벽 먼동이 트자마자 새벽같이 도인스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법, 내다 팔기에 가장 좋은 최상품 수박 한덩이를 잘 싸서 보자기에 싸서 들고 열심히 산을 올랐다. 수박이 얼마나 무거운지 오른손 왼손으로 번갈아 들고는 헐떡이는 숨을 다잡으며 절에 도착한 농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님이라고는 꾀쬐쬐한 옷을 입고 왜소하게 마른 몸으로 문전에서 탁발하는 스님을 만나본 게 전부인지라, 농부는 풍채좋은 도인 스님을 만나자 마자 위세에 눌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땀을 흘리면서 가져온 수박을 썰어서 드렸다.


스님은 아침부터 시장하셨는지, 그 큰 수박 한통을 모두 다 드셨다. 자기네 세 가족이 먹어도 남을 수박 한통을 전부 드시고 새벽부터 수박을 들고온 자신에게는 먹어보란 말도 없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였으나, 큰 풍채의 스님은 너무 어려웠다.


농부는 계속 땀을 흘리면서 그저 먼저 말씀을 걸어주시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스님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천천히 하문하셨다.


“그래, 무슨일로 오셨소?”

“아 네… 스님 그저 저는 요 아랫마을에서 평생 농사 짓고 사는 일자무식 농사꾼입니다요… 그저 저하고 우리 마누라, 제 자식 한 놈 이름자 석자나 쓸 수 있고, 다른 것 보다도 그저 평생 쓰고 남을 만한 글 한 줄만 가져보는 것이 제 평생 소원입지요.”

“그래요, 알겠소. 내 찬찬히 기별하리다.”


딱 두마디 듣고 기듯 절문밖을 나온 농부는 어느새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부아가 슬 치밀었다. 낑낑대며 귀한 수박을 갖고 와서 맛도 못보고, 글도 못얻고 기약없이 연락을 기다리란 말을 듣자고 내가 어제 뜬잠을 자고 새벽부터 산을 올라왔나 싶었다. 그러나 딱히 별 수도 없기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기별은 없었다. “내가 이 중놈한테 따지러 가야겠다”고 하니 부인이 말했다.


“여보, 혹시나 오늘 가서 당신 원대로 글을 써주면 빈손에 어쩔라고 그러오. 저기 팔려고 싸 놓은 참외라도 가져가시지요”


그랬다. 혹시 오늘 글을 선뜻 써주면 괜히 큰소리 쳤다가 무식한놈이 성질도 안좋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었다. 팔려고 종이에 곱게 싸둔 참외 다섯개 한다발을 품에 안고 다시 절로 향했다. 스님 앞에서 종이를 풀자, 참외 향기가 진동한다. 참외 다섯개를 모두 깎아 놓으니 참외향에 그저 취할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저게 돈이 얼만가 싶어 아깝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도인스님은 참외 다셧개를 낼름 다 드신다. 먹어보란 말도 없이.


“그래, 무슨일로 오셨소?”


어이가 없어 고개를 드니 스님의 풍채에 기운이 눌린다. 농부는 그래도 처음보다는 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 제가 엊그제 왔던 요 아랫마을에서 평생 농사 짓고 사는 일자무식 농사꾼이온데, 우리 가족 이름석자, 그저 평생 쓰고 남을 만한 글 한 줄만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기별이 없으시기에 이리 또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알겠소. 내 찬찬히 기별하리다.”


보름을 기다리다 같은 똑같은 말을 두 번 듣고 나오니 더 부아가 치밀었다. 힘들게 농사지어 수확한 참외는 향도 좋았는데, 팔지도 못하고 맛도 못보고 다 빼앗기고, 글도 얻지를 못하니 다시 들어가서 저 중놈을 때려서라도 한 글자 얻어갈까 싶었으나, 그랬다가 평생에 한 번 찾아온 유일한 기회를 놓칠 듯 하여 약속한 기별을 기다리기로 하고 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만사가 귀찮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또 보름이 지났다. 역시 기별은 없었다. 농부는 내심 이번엔 올라가서 멱살이라도 붙잡고 수박과 참외를 뱉어내던지, 글을 내 놓던지 양단간에 결론을 내리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씩씩거리며 신을 신고 있으니 부인이 말했다.


“여보 두 번이나 가서 부탁드렸는데, 세번째 설마 안써주시겠소, 그 때 빈손이 부끄러울 수 있으니 일단은 진정하고 뭘 좀 들고 가시지요”

“아니 그 귀한 수박에, 참외를 다 갖다 바쳤는데, 이번엔 뭘 가져가란 말이오.”

“찰쌀이 조금 있으니 인절미를 좀 해서 가시지요”


그렇게 힘들게 떡까지 만들다 보니 농부는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 이번에 떡 드리고 안주면 사단을 내도 그 때 내자.”


오르던 길이라 익숙한 산길을 단숨에 올라간 농부는 스님앞에서 떡을 내 놓으니 고소한 ㄷ인절미 향이 또 코를 자극한다. 풍채 좋은 도인스님은 그 떡 한되를 다 드신다. 역시나 먹어보라는 말이 없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그래, 무슨일로 오셨소?”


농부는 이제 스님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았다.


“스님 제가 엊그제 요 아랫마을에서 평생 농사 짓고 사는 일자무식 농사꾼이온데, 우리 가족을 이름석자, 그저 평생 쓰고 남을 만한 글 한 줄만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처음에는 수박도 자시고, 두번 째 왔을 때는 참외도 자시고, 기별하신다 하시고, 이제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오늘 이렇게 떡 한되를 다 자시고 또 이리 물어보십니까, 오늘은 우짜든지 제게 글을 써 주셔야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요, 알겠소”


도인스님은 먹을 갈고 붓을 준비하더니 장삼자락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이제 뭔가 가르쳐줄라나 보다 싶어 농부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스님은 종이 석장에 같은 글을 4자씩을 쓰더니,


“이걸 가져가시오”

“이게 뭡니까 스님”

“참을 인자와 덕 덕자, 인지위덕이오, 대문에 하나 붙이고, 부억 문에 하나 붙이고, 방문에 하나 붙여두고 보일 때 마다 소리내어 읽으시오. 인.지.위.덕, 참으면 덕이된다.”


농부는 신이 나질 않았다. 이름도 쓰고 천자문이나 이런 것이라도 알려줄 거라고 믿었던 터라 글은 받았으나 너무도 허무하게 받은 글자 4개가 똑같이 적힌 종이 석장에 농부는 그저 포기하고 시키는대로 대문에 하나, 부억문에 하나, 방문에 하나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니 도리 없이 읽어보았다. 사실 좋다는 말이긴 한데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그저 수박과, 참외와 인절미가 아까워서 읽고 읽을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3년이 지나고 이제 농부는 도인스님 따위는 잊어버렸다. 그리고 어느날 멀리 보부상을 따라 1년을 기약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장사가 잘 되어 6개월 만에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었다. 싸리문을 열고 부인 얼굴을 보기 위해 신나게 들어오는데, 싸리문에 오랜만에 보는 “인지위덕, 참으면 덕이된다”를 읽어보고는 웃으며 들어서니 댓돌에 부인의 여자고무신 옆에 왠 남자고무신이 가지런히 있었다. 


농부는 자신이 돈을 벌러 떠난 사이 외간남자와 정을 통했구나 싶어 불같이 화가났다. 식칼을 들고 외간 남자놈과 무정한 아내를 죽여버릴 요량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여지없이 부엌문에 붙은 “인지위덕, 참으면 덕이된다”를 또 보고 농부는 일단은 차분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칼을 빼들고 살금살금 방문을 열려니 또 방문에 “인지위덕, 참으면 덕이된다”가 붙어있다. 허리춤에 칼을 단단히 끼우고는 일단 이 마을에 어떤 놈인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이놈을 죽여도 죽여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방문을 여니 아니, 왠 비구니 스님이 한 명 자신의 아내와 잠들어 있었다.


세상에, 그녀는 20년 전 생활고에 집을 떠난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20년만에 집을 찾아오니 오빠는 돈을 벌러 떠났고, 시누올케 사이에 밤새 옛 이야기를 나누며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농부는 화가나서 자신의 손으로 여동생과 부인을 죽일 뻔 하였으나 “인지위덕 저 글자가 실로 덕이 되어서 저들을 살리고 나는 살인죄를 면했구나”를 생각하며 다음날 도인 스님을 찾아올라갔으나, 스님은 간 곳이 없었다.  [끝]

  


*비슷한 이야기 * [한국 구비문학 대계 최래옥 씨 채록] 1979년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사는 이모상(남, 75)님이 구연(口演)한 내용 https://steemit.com/kr/@cjsdns/2pfkunhttp://www.namhae.tv/news/articleView.html?idxno=25723https://wahnjaesky.tistory.com/17994432*여우이야기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 blogId=kabsoonhwang&logNo=221042393755&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directAccess=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