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1923. 11월구비자 만우스님장소 동학사채록자 동아일보 기자자료 중도일보 http://m.joongdo.co.kr/view.php?lcode=&series=&key=20071120000000099#ref정리 전자불전연구소 2023. 0412.동아일보 12.06-08일자 계룡산기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자, 백제의 왕족이었던 상원(上院)스님이 계룡산으로 들어와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스님은 나라잃은 서러움을 잊고 스님이 되어 여생을 보내고자 하루하루 수행과 불공에 매진하며 살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이 되어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날 스님이 좌선을 하고 삼매에 들어있는데 밖에서 큰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나가 보니 송아지 만한 호랑이가 동물을 잡아먹다가 갈비뼈가 목에 걸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원스님은 "네가 살생한 까닭으로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호랑이 목에 손을 넣어 뼈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고마운 몸짓으로 숲속으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다가, 간혹 산돼지를 물어다 마당에 던져놓고 가곤 했다. 스님은 "내가 살생을 하지말라고 했거늘 자꾸 살생을 한다는 말이냐"하고 호랑이를 꾸짖었다. 

며칠이 지난 뒤 갑자기 밖에서 도시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달빛 아래 묘령의 여인이 쓰려져 있었다. 스님은 암자안으로 여인을 데리고 들어와서 간호를 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두려워 하며 울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신데 이 깊은 산중에 오게 되었습니까"

"저는 경상도 상주 땅에 사는데, 시집간 첫날 변소에 나왔다가 송아지 만 한 호랑이가 앞에 있길래 기절했는데, 깨어보니 여기입니다."

이 때 부터 요강이 생겨났다고 한다. 스님은 며칠을 머물게 한 뒤, 집으로 데려다 주고자 했으나 여인은,

"고향에서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니 어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스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으니 저는 스님을 지아비처럼 모시고 살겠습니다."

"나는 불제자를 혼인할 수는 없소.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나와 함께 남매로 이곳에서 삽시다"

그렇게 하여 김씨 여인은 출가하여 비구니 스님이 되었고,둘은 오빠와 누이로 지내며 함께 도를 닦다가 시간이 지나 함께 입적했다. 두 사람에게서 사리가 나왔다. 상주김씨 집은 재물을 내어 청량사를 세웠다. 상원조사의 제사 회의懷義스님이 오뉘탑(청량사지 쌍탑)을 세웠다.

중도일보 http://m.joongdo.co.kr/view.php?lcode=&series=&key=20071120000000099#ref일간경기 http://www.1g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038